어영부영.
내 서른다섯 인생을 관통하는 단어야.
어영부영 공부하고, 어영부영 살았어.
남들만큼 치열하게 살아보지도 공부하지도 못했어.
아니, 않았다는게 맞는 표현이야.
생각만 많고 실천 못해서 포기하고선 그냥 어영부영.
딱히 좋지 않은 집안 사정에 어렸을 때 부터 스스로
벌어 열심히 학교 다니며 공부했으면 좋으련만
나는 그저 돈 버는 것에서 멈춰버렸어.
공부도 했어야지 멍청한 놈..
그 와중에 아버지 돌아가시고 난 더 급하기 취업전선에
뛰어들 수 밖에 없었어. 아득바득 개고생하며 사셔놓곤
암진단 받고 3개월도 안되서 그렇게 급하게 가셨어.
원체 말도 없고, 애정 표현도 안하는 부자지간이라,
나 취업하면 아빠랑 포차 가서 소주때리고 싶다라는
생각만 있었는데. 염병 그냥 소주 사달라 말할 걸.
제일 후회 되는 것 중에 하나임.
그렇게 이런저런 일 하면서 어영부영 살면 됐지
성격은 뭐가 그리 대쪽 같았는지, 부당한 거 보면
못참고, 같이 일하는 직원들 불만 사항 같은거 대신
말해주고 하다 보니 찍히기나 하고.
씨바 공부 열심히 할걸.
너무 어영부영 사는가 싶어 운동을 시작했고
몇번의 사랑도 하고, 또 몇번의 이별도 했어.
서른셋에 얘정도면 결혼 해도 되겠다
싶은 여자를 만났는데
이젠 엄마가 아프네... 치료제도 없고, 방법도 없고,
그저 진행 늦추면서 버티셔야 하는데 케어하면서
그 와중에 결혼하고 또 애낳고 키우고 살 자신은 없더라.
아 씨바 이제 좀 살만한데, 숨좀 쉬겠는데 엿같네.
그래서 깔끔하게 결혼 포기. 개 욕쳐먹으면서 헤어지자
그랬어. 엄마 아파서 결혼하기가 좀.. 하면
상관없다 달려들거 같아서 겁났어.
그래도 남의 집 귀한 딸인데...
마음 정리하고, 엄마 멘탈 케어하고, 나는 열심히
일다니고, 또 운동가서 내 몸 케어하고 그렇게
또 하루하루 열심히 살았어.
근데 코로나 터지고 나서 회사가 어려워 지는데
그 스트레스를 나한테만 풀더라 이사가.
조용히 회사다니니까 만만해 보였나...
개짓거리를, 개소리를 반념 넘게 듣다보니
내가 멘탈이 터지더라.
원체 찐따 아싸라 집안일도, 회사일도 누구하나 붙잡고
하소연 할 수가 없었는데 회사에서 그렇게 쪼으니까
버틸 수가 있어야지.
그래서 이사한테 욕박고 그만두고 나왔어. 개 같은놈
너는 내가 무조건 신고 한다 개새끼. 뒤로 헛짓거리
하는거 내가 모를 줄 알지 ㅋㅋㅋ
씨바 공부 존나 열심히 할걸.
그래서 일주일 백수 생활 하다 내가 살아온 거
생각해보니 너무 어영부영 살았더라.
생각만 많고 결정 하나 쉽게못 내리고.
생각의 늪에 빠져선 허우적거리다가
그렇게 포기하더라구.
그러다 보니 생각 없이 걷고 싶어졌어. 생각 없이 걷다가
우연히 만나는 장면 하나 하나에 젖어들고 싶어졌어.
그래서 도보 여행 생각 났는데, 국토 종주 같은 거 하기엔
집을 오래 비워 둘 수가 없어서, 어쩌지 하다가
제주도 생각나더라고. 고등학교 수학여행 말고 가본 적이
없거든. 엄마랑 동생 제주 여행 보내고 난 일한 거 밖에
없으니까..
그래서! 내일 제주도 도보 여행 간다!
다녀와선 또 어떻게든 살아가겠지! 엄마 그나마
일상 생활 할 때 혼자서 여행 한번 가볼란다!
남들은 내일로니 뭐니 하면서 이십대에 많이 가던데
씨바 서른 다섯 쳐먹고 처음으로 혼자 여행가본다 ㅠ
그래도 나보다 더 힘들게 사는 사람 많을텐데...
주저리주저리 혼자 여행간다니까 설레가지구
말 존니 많아졌네;;; 부끄럽당
펨붕이들도 그냥 아재 하나가 넘 기분 좋아서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갔음 좋겠당^____^
일단 내일 11시 반 제주 도착해서 애월까지 가는게
목표임!ㅋㅋ
별탈없이 여행 마쳤으면 좋겠다 ㅎㅎ
별일 없으면 하루하루 사진 찍어서 올려볼게!
글없으면 중간에 어디서 통나무 됐다던가
바다에 둥둥....ㅋ